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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바꿨을까

  • 등록일2024-07-01
아파트 2편 아파트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바꿨을까?

집은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의 형태가 달라지면 삶의 모습도 바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전통가옥에서 생활하던 1960년대, 단지형 공동주택인 마포아파트가 건립됐지만 사람들은 낯설어했다. 하지만 상황은 금세 변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증가한 아파트 거주 인구는 여전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4년 현재,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할 정도로 우리나라 대표 거주 형태가 된 아파트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과거 주택의 모습과 아파트 모습
수평에서 수직으로 땅에서 발을 뗀 사람들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서 한국 사람들은 비로소 발을 땅에서 떼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이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마포아파트가 세워졌을 당시, 정부는 아파트가 가장 편리한 주택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시민들은 외면했다. 전력난과 비용 문제로 엘리베이터 설치와 중앙난방, 수세식 화장실 등 최신식 시설들의 설치가 반대에 부딪혔고, 연탄가스 위험이 상존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당시 대한주택공사는 이런 소문을 잠재우고자 동물실험을 하는가 하면, 현장소장이 직접 하룻밤을 보내며 생활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잠을 자느냐’라며 불안해했고, 결국 초기 입주율이 10%를 넘지 못했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여 아파트 생활이 편리해지고 중산층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 인식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5층 건물의 높이도 무서워하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부엌에서 주방으로 서서 음식을 만들고 식탁에서 식사하고

아파트의 등장으로 부엌과 식탁의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보통 생활공간과 분리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식사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입식 부엌에서 요리하고, 근처에 놓인 식탁에서 식사하게 된 것. 덕분에 요리와 식사 사이의 동선이 짧아졌다. 이때부터 ‘주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부엌이라는 단어가 구식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펼쳐진 공간에서 압축된 공간으로 모든 생활을 집 안에서

아파트가 한국의 전통 가옥과 다른 점은 모든 공간이 내부로 들어와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전통적인 가옥에서는 욕조와 변기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화장실은 거주하는 공간과 멀찍이 떨어져 있고, 목욕은 보통 물을 끓일 수 있는 부엌과 가까운 공간에서 이뤄졌다. 또 마당이라고 하는 외부 공간도 있었으며, 화장실이나 부엌으로 가려면 마당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다른 주택에서도 모든 공간이 한 평면으로 압축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엌, 화장실, 욕실 등이 실내로 들어오고 주거 생활도 서구적인 형태에 가까워지게 됐다. 특히 욕실과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온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이전까지 재래식 변소를 이용하던 사람들에게 변소를 안으로 들이거나 욕조와 한 공간에 변기를 둔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화장실의 경우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어야만 실내로 들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당시의 수세식 변기는 현재와 같은 의자 형태가 아니었다. 대부분 쪼그려 앉는 동양식 변기가 설치되었고, 물을 내리는 수세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입주자들이 사용법을 몰라 애를 먹는 일도 있었다.

단독주택 중심의 마을의 모습과 대단지 아파트를 일러스트
마을에서 아파트 단지로 단지를 중심으로 공동체 문화 형성

최초의 단지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의 옥외 공간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녹지, 공원, 상점, 운동장 같은 공공시설이 그것이다.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짐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가진 부속 건물들이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왔다. 상가 건물은 물론이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도 들어섰으며, 놀이터나 노인정 등의 편의시설도 단지 내에 마련돼 있어 대부분의 생활이 아파트라는 일정 공간 안에서 가능해졌다. 또 인구가 집중되면서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학교가 세워져 자녀 교육으로 인해 주거지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줄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마을 공동체는 ‘아파트 공동체’가 되었다. 아파트가 실외 공간에서 실내 공간으로의 변화를 불러왔다면, 아파트 단지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생활에서 투자로 가계 자산 중 최고가는 아파트라는 인식 확대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사는(Live) 공간인 동시에 사는(Buy) 공간이 되었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는 주식시장보다 주택시장이 훨씬 크며,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3.6%에 달한다. 미국(34.9%), 일본(43.7%), 영국(55.3%) 등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국내에서 아파트는 다른 주거 형태보다 매도인, 매수인 모두에게 인지도가 높다. 규격화되고 대량 건설되며, 최소한의 품질이 보장되는 아파트의 특성 때문이다. 또 아파트는 매매가 쉽고 가치평가가 쉽다. 최근 들어 “어느 동네의 어디 아파트에 거주하는지가 부의 척도를 가늠한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이 다시 아파트를 선호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파트를 둘러싼 시시비비는 곳곳에서 갈린다. 누구는 집 마련할 형편이 안 돼서 결혼을 안 하고, 누구는 청약 확률을 높이기 위해 결혼을 한다. 전월세 집을 찾아다니느라 유목민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시세 차익이 더 날 만한 아파트로 이사 다니느라 유목민이 된 사람도 있다. 과거에 비해 집이라는 공간에 얽힌 욕망과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해진 것이다.

 그땐 그랬지 식모방을 아십니까?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은 물론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부유층의 상징물이었다. 그 예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지어진 아파트의 구조를 보면 50평대 이상의 대형 평수에는 예외 없이 집 한편에 식모방이 있었다. 당시 농어촌에서 서울로 상경한 젊은 여성들이 부유한 가정에 식모로 일하는 일이 많았다.  베란다에 줄줄이 늘어선 장독대 1980년대 후반까지도 아파트 베란다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며 장독을 고이 챙겨 간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베란다에 장독을 늘어놓았고, 베란다에 지나친 하중이 실리고 미관을 해치는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1968년부터 ‘장독대 없애기 운동’이 진행되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고.  놀이터는 어디에? 당시에는 놀이터가 희소했다. 1960~1970년은 아파트 건설 시 커뮤니티 시설이나 놀이터를 의무 마련하는 규정이 없을 때다. 시민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놀이터가 없어 옥상에서 놀다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자주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 참고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아파트의 등장과 주거생활 변화’  -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효형출판

공간이 바뀌면 의식도 바뀐다.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땅을 딛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수직적이고 압축적인 공간에서 효율적인 동선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가 등장한 지 60여 년. 우리의 삶은 아파트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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